레전드들의 연이은 국가대표 은퇴 선언, 그 아쉬움에 관하여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한 한국야구대표팀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월 14일 대표팀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귀국한 가운데, 주축 선수였던 김광현과 김현수는 잇달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WBC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김현수는 13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중국전을 마치고 인터뷰에서 마지막을 고했다. 김현수는 이미 WBC 엔트리에 발탁된 이후부터 이번 대회가 마지막 태극마크임을 암시해왔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결정이었다. 김현수는 "저보다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저는 이제 나이도 있고, 젊은 선수들이 잘할 거라 생각한다. 내려올 때가 된 것같다. 다만 마지막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아 아쉽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김광현은 지난 14일 귀국 후 개인 SNS 계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혔다. 김광현은 "저에게 국가대표는 꿈이고 자부심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제창하던 그 모습은 평생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라고 회상하며 "이제는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고 분통하다. 오늘부터는 랜더스의 투수 김광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하다. 국가대표 투수 김광현 올림"이라는 글을 남겼다.
김광현과 김현수의 국가대표 은퇴 선언은 한국야구에 '황금세대의 퇴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선수는 한국야구대표팀의 최고 황금기로 불리우는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대표팀 막내급이었던 두 선수는 한일전 등 중요한 순간마다 맹활약하며 당당히 우승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이후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올라섰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랜 시간 꾸준히 활약했다.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이야기한 선수는 김현수와 김광현 둘 뿐이지만, 이번 대표팀에 발탁됐던 선수 가운데 박병호, 양의지, 양현종, 최정 등 1980년대생 고참 선수들은 대부분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국제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아시안게임과 내년 프리미어12 등이 있지만 젊은 선수들 위주로 엔트리를 꾸릴 것이 유력하고, 다음 WBC가 열리는 2026년은 3년 후이기에 베테랑 선수들은 은퇴하거나 기량이 노쇠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타이밍'이다. 하필이면 최근 한국야구의 국제경쟁력이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이들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마지막 국제대회마저 최악의 성과를 남기고 박수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떠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에 이어 WBC 1라운드 탈락으로 야구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의 분위기가 싸늘한 게 사실이다. 한국야구의 경쟁력 하락이나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플레이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는 책임감을 바탕으로 보여준 헌신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광현과 김현수는 이번 대표팀에서 최고참급이자 가장 국가대표 경력이 풍부한 선수들이다. 그만큼 한국대표팀이 겪었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들도 모두 경험해봤다. 그 이야기는 바로, 이들이 누구보다 많이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헌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부상이나 해외진출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표팀 소집을 거부한 적이 없다. 실제로 이들은 국제대회에서도 한국이 가장 믿고 내보낼 수 있는 확실한 카드들이었다.
막내급이었던 시절에는 든든한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그라운드에서 자기 몫만 충실히 하면 됐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베테랑이 되었을 때는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노력한 만큼 따라주지 않는 팀성적에, 고참선수로서 앞장서서 화살을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잦았기에 더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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