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시민군사령관 만난 봉사자... "한국인인 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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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민군사령관 만난 봉사자... "한국인인 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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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인도 최동단, 미조람의 주도 아이자울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방콕과 콜카타를 거쳐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미얀마를 도우려는 길 벗들의 정성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하늘 길을 달렸습니다 미조람 그리고 미조람의 주도 아이자울. 아마 처음 들어 보시는 지명일 것입니다. 미얀마와 접경지대로 예전에 미얀마의 영토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20년간 인도와 내전을 벌인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인도 공군이 산 위 도시와 마을을 폭격하여 계곡마다 원한이 스며 있기도 합니다. 이제 이곳은 미얀마 난민들이 아픔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쿠데타 이후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국경 넘어 마을과 마을로 스며들었습니다. 이곳에서도 많은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에 우리가 어떤 눈빛으로 화답할 수 있을까요?"
 
일주일 전쯤인 지난 주말, 페북에서 우연히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미조람? 아이자울? 낯선 지명이 흥미로워 포스팅을 다 읽어보니 권태훈 사람예술학교(링크) 이사장이 '전쟁난민집짓기 프로젝트' 후원자들에게 안부와 감사의 글을 전한 내용이었다.  
 
권태훈 이사장은 법학 전공 뒤 기독교 채널(C3TV)에서 방송일을 했던 경력도 있지만, 스스로를 "소셜 프로듀서 (Social Producer)"라고 소개한다. 그가 의도하는 소셜 프로듀서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이런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2012년부터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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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얀마 난민을 위한 집짓기 프로젝트 이외에도, 난민촌 아이들을 위한 사람예술학교, 렘브란트 미술학교, 북한영아 우유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사회공헌 인재학교 프로젝트, 여주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글짓기학교, 바리스타직업훈련 등등 수없이 많은 소셜 프로젝트를 기획 뒤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인도와 미얀마에서 직접 마주한 미얀마 난민과 시민군의 현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듣고자 지난 13일 온라인 인터뷰를 했고, 아래는 이를 요약한 내용이다.
 
10여 년간 이어진 미얀마와의 인연
 
- 인도 최동단에 갔다는 포스팅을 읽었다. 왜 그 먼 곳까지 가게 된 것인가.
 
"한국에서 인도 최동단, 미조람의 주도 아이자울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미조인의 땅'이라는 뜻의 미조람은 미얀마 친주(미얀마 북서부 지역)와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했다. 미조람은 인도와 20년간 (1966년-1986년)전쟁을 했고 평화조약후 인도의 한 주로 정착과정에 있다. 현재 미조람 전체에는 약 15만 명으로 추정되는 난민이 있다.  
 
최근 지인이 여기 군부가 수 만 채 집을 다 불태운다고 알려왔다. 현지에서 대나무로 집을 짓는데 한 채당 약 40-50만 원가량의 돈이 필요하고 병원 운영비도 급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송금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미조람으로 가게 된 것이다. 전에는 쿠데타 직전에 수입한 커피 판매로 번 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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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위해 미얀마 커피 판매 등 많은 재정지원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미얀마와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제가 난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인터넷 블로그에서 태국 메솟의 미얀마 난민촌에서 자원 봉사했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베네딕트 소속 한국 수녀님께 이런저런 문의를 드렸더니 현장에 저를 초청하셨고 현지 학교도 소개받았다. 그래서 2013년 처음으로 뮤지션들과 음악팀을 만들어서 메솟의 아동을 대상으로 음악학교를 했다. 이후로 매해 1월마다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음악 프로그램으로 치유를 하고자 했다."
 
- 지금 하는 '사람예술학교'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태국 메솟에는 난민학교가 65개 가량 있다. 2013년 자주 방문했던 뉴블러드스쿨에 3백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다음해에 더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숫자가 늘은 게 의아해서 교장선생님께 물어봤더니 계속 난민이 유입되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때부터 난민이 증가하는 데는 미얀마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걸 깨닫고, 이왕이면 본토로 가서 활동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미얀마의 대도시 양곤, 만달레이, 사가잉, 까친주 등 난민이 많은 지역에 가서 댄스, 합창, 바이올린과 기타 수업을 진행했다. 
 
예술학교 시작 동기는 미얀마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음악/예술 이외에는 이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얀마에 예술대학을 설립해 소수민족들에게 할당제를 시행할 계획이었다. 학생들이 4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서로 우정을 쌓으면서 미얀마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면, 민족 분쟁에 의한 난민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만달레이 주지사와 시장을 만나 제안을 했더니 미얀마에는 교육법이 없어 내외국인 모두 대학을 설립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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